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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ella 님의 블로그
5·18 전남도경찰국장 안병하ㅣ그분이 지키려 했던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총을 내려놓게 한 사람, 안병하 치안감
1980년 5월, 광주.거리에 울려 퍼진 총성,
두려움에 떨던 시민들, 가족의 생사를 몰라 밤새 애태웠을 사람들. 우리는 그 시간의 수많은 희생자를 기억합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 다친 이웃을 돌본 사람들,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의 손을 잡아 준 사람들.안병하 치안감.
총의 무게를 아는 사람총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 전쟁터에서 직접 본 사람이었을 거예요.
안병하는 처음부터 경찰이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 8기로, 6·25전쟁 때 춘천전투와 음성 동락리전투에서 세운 무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경찰에 특채되었습니다. tfnewsis
총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 전쟁터에서 직접 본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1980년 5월, 그가 보인 선택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1980년 5월, 안병하는 전남도경찰국장이었습니다.
경찰청 자료와 여러 보도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관들에게 무기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경찰청 누리집은 그가 시민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는 뜻으로 명령을 거부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heraldk
명령 한마디에 누군가의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총을 쏠 것인가, 거둘 것인가. 그는 거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 같은 생각을 붙잡게 됩니다.
그에게 시민은 진압해야 할 대상이기 전에, 지켜야 할 사람이 아니었을까.
공직자의 권한은 사람을 두렵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지키라고 맡겨진 것입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장 시험받던 날, 그는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뜻을 같이한 경찰관들이 있었습니다.
목포에서는 이준규 서장이 계엄군의 강경 진압 지시를 거부하고 경찰관의 실탄 발포를 금지했습니다.
함평경찰서의 정충길 경사,
강정웅·이세홍·박기웅 경장은 5·18 때 순직해 지금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heraldkheraldk
옳은 선택에 돌아온 가혹한 대가신군부는
최후 진압을 앞두고 1980년 5월 26일 그를 직위해제했습니다.
같은 날 그는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되어 보안사 동빙고 분실에서 8일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경찰을 떠나야 했고,
후유증을 안은 채 8년을 앓다가 1988년 10월 10일, 예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정부포상 +2
사람을 지키려 한 그분들이 왜 이토록 큰 값을 치러야 했을까.
옳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보호받는 사회였다면,
그는 그렇게 오래 홀로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의 이름이 공적인 역사에서 다시 불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그의 명예는 또 한 번 시험을 받았습니다.
2017년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이 광주 초기 상황을 전남경찰국장의 무능과 작전 실패 탓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전남경찰청은 경찰관 137명의 증언과 감찰기록을 확인했고,
근무지 이탈 같은 직무유기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스스로 해명할 수 없습니다.
그를 대신해 증언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seoul
하지만 뒤늦은 인정이 그가 겪은 고통을 되돌려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국가가 명예를 회복해 주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가 끝내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잊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병하 치안감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질문을 건넵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까.
조직의 명령과 시민의 안전이 부딪힐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명령을 전달하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이 끝나는가, 그 명령이 사람에게 닿은 결과까지 살피는 것이 책임인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만이 훌륭한 공직자의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이 권한이 누구를 위해 주어졌는지 잊지 않는 것,
내리는 결정의 무게를 아는 것,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공직의 본분일 것입니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은 무거워야 하고, 명령이 강할수록 양심은 더 깊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슬픔만 느낀 것이 아닙니다
감사했습니다.
그 모진 시대에도 시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을 텐데도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오늘 우리가 다시 부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의 지시가 몇 사람을 살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민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 그 선택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안병하 치안감님.
그분이 지키려 했던 시민의 생명을 기억합니다.
그분이 견뎌야 했던 고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분처럼
자기 자리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소망합니다.
오늘 당신의 따뜻한 큰뜻을 헤아려봅니다.
ㅡ 여성임업인 루시아
- 어두운 시간에도 사람을 먼저 생각한 이가 있었다.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 또한 사람을 지키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분이 지키려 했던 시민의 생명을 기억합니다.
그분이 견뎌야 했던 고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분처럼 자기 자리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소망합니다. - 그의 지시가 몇 사람을 살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민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 그 선택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 이분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슬픔만 느낀 것이 아닙니다. 감사했습니다.
- 권한이 클수록 책임은 무거워야 하고, 명령이 강할수록 양심은 더 깊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 권한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까.
조직의 명령과 시민의 안전이 부딪힐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명령을 전달하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이 끝나는가, 그 명령이 사람에게 닿은 결과까지 살피는 것이 책임인가. - 공직자의 자리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 광주에서 그를 위한 추모식이 처음 열린 것은 33주기인 202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 18일에는 경찰 지휘부가 그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습니다. newsisheraldk
- 2006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었고, 2017년 경찰청이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해 추모 흉상을 세웠습니다. 그해 11월 정부가 치안감 특진 추서를 의결했고, 이듬해 3월 10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추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경찰 지휘부, 故안병하 치안감 참배…“불의에 맞선 선배 경찰관 정신 계승” [세상&] +2
- 늦게 찾아온 인정, 그리고 지켜낸 명예 .그만 겪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남 경찰 가운데 68명이 정직과 감봉 같은 징계를 받았고, 123명이 강제로 사표를 내야 했습니다. police
- 그의 선택에는 혹독한 값이 따랐습니다.역사는 큰 사건과 숫자로 기억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다시 맞았을 내일이 있었습니다. 숲에서 묘목 하나가 자라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뿌리와 흙의 일이 먼저 있듯이, 어떤 생명은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의 선택 덕분에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 .공직자의 권한은 사람을 두렵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지키라고 맡겨진 것입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장 시험받던 날, 그는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 경찰청 자료와 여러 보도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관들에게 무기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경찰청 누리집은 그가 시민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는 뜻으로 명령을 거부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heraldk
- 명령보다 먼저 생각한 사람.안병하는 처음부터 경찰이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 8기로, 6·25전쟁 때 춘천전투와 음성 동락리전투에서 세운 무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경찰에 특채되었습니다. tfnewsis
- 오늘은 그 한가운데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 했던 한 경찰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 봅니다.그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 총을 내려놓게 한 사람, 안병하 치안감.옳은 선택의 값을 혼자 치른 사람 — 5·18 전남도경찰국장 안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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