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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ella 님의 블로그

숲속단상 ㅣ사람 속 하루, 숲속 하루 본문

🌿 루시아의 숲정원

숲속단상 ㅣ사람 속 하루, 숲속 하루

forestella 2026. 9. 23. 09:07

 

요즘 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루쯤은 잘 지낸다.

웃고, 이야기 나누고
밥을 함께 먹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반갑게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틀째가 되면 조금씩 지친다.

예전엔 그런 내가 낯설었다.
나는 원래 사람을 참 좋아했으니까.

 

젊었을 땐 생기가 넘쳤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좋았고
누군가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섰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그럼 내가 하지 뭐” 하며 몸을 움직였다.

 

교회생활에선 함께 밥을 짓고,나눠먹고 
아이들을 챙기고
크리스 마스엔 집집마다 찾아올 아이들 몫으로
과자보따리를 미리 준비하던 시간들.

그때의 나는 참 많이 움직였다.
몸도 마음도, 지금보다 앞서 있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며그 생기가 조금씩 줄어드는 걸 느낀다.

사람들 속에 함께 하다보면

살짝 지쳐감을 느끼는 나이가 된것이다. 
 

말을 많이 해서도,
사람이 싫어져서도 아니다.
아마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많은 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
표정을 살피고
웃고 반응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혼자 있고 싶어지는것.

 

그래서 나는 산속나의 둥지가 좋은가보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에게 “오늘 좀 지쳤어” 말해도 되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새가 울면 우는 대로 듣는다.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도 그저 바라본다.

 

나무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어줄 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앉아만 있으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살아난다.

젊었을 때처럼 뿜어져 나오는 생기는 아니다.
조용한 생기다.

 

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며
“참 예쁘다” 생각하는 마음.
묘목의 새순 하나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마음.
새소리에 잠깐, 손을 멈추는 마음.

예전의 나는
사람들에게 생기를 나누어주며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숲에게 생기를 받으며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속에서 하루,
숲속에서 하루.

지금의 나에게는 이 리듬이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오두막 문을 열고
숲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얘들아, 루시아 왔다.”

나무도 새도 대답하지 않지만
나는 안다.

이곳에 오면
내 안의 무언가가다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조금씩 잃어가는 그 생기를
숲과, 그 안의 작은 생명들이
말없이 나누어주고 있다는 것을.

 

숲은 내가 늙어가는 것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다만
늙어가는 나에게 새로운 생기를 가르쳐줄 뿐이다.

 

— 숲속단상, 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