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몸이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조금 피곤해도, 잠을 덜 자도, 하루쯤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혈압 수치가 조금 높다고 해도
“오늘만 그렇겠지”,
“조금 지나면 내려 가겠지”
그렇게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고혈압이 이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올 줄은 몰랐다.
그날은 갑자기 왔다
200이 넘는 혈압.
응급실.
뇌 MRI.
의사의 입에서
“이상 소견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멍해졌다.
아… 진짜 큰일 날 뻔했구나.
그날 이후 몸은 계속 신호를 보냈다.
오른쪽 머리가 욱신거리고,
눈이 찌릿찌릿 했고,
바람만 스쳐도 두피가 아파온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고혈압은아프게 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사람을 몰아붙인다는 걸.
무식했던 건, 병이 아니라 나였다
약을 먹으면 나을거라 생각했다.
수치만 내려가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혈압은 숫자 문제가 아니라
삶의 속도 문제였고, 몸을 대하는 태도 문제였다.
204까지 올라갔다가
140으로,
다시 103으로 떨어지는 그 수치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약이 무서웠다.
내 몸을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구나.
몸은 벌을 주는 게 아니었다
의사들은 말했다.
“조금 쉬어야 합니다.”
“지금은 조절하는 단계예요.”
대상포진일 수도 있다는 말,
신경통일 수도 있다는 말보다 더 크게 남은 건 이것이었다.
몸은 나를 벌주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그만 나를 돌아 보라고 손을 붙잡고 있는 중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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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다짐 대신 선택을 한다
대단한 각오를 세우진 않는다.
대신 이렇게 하기로 했다.
- 아프면 참지 않기
- 숫자보다 느낌을 먼저 보기
- “괜찮다”는 말, 함부로 하지 않기
- 쉬어도 되는 사람으로 나를 대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고혈압을 얕잡아보지 않기.
이 글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조금 늦게 배운 사람의 기록이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보다
“나는 돌봐야 할 몸이구나”라는 말이
더 필요했던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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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사실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